SON Wookyung's Time&Space Lab : image phenome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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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sertation& Paper'에 해당하는 글(10)
2014.02.18   <Attraction & Pathos>
2013.11.27   기법으로서의 영상의 가능성
2013.11.02   내용과 형식, 주제와 기법
2013.09.16   시적효과
2013.01.23   (1)우유분리기와 「그랄의 잔」
2013.01.19   형태 조작과 본인 작품과의 관계
2013.01.09   유자와 마사노부 「마니에리즘과 형태 조작」
2012.12.17   조형연구센터 발표_[파토스와 기법 -영상제작의 입장에서]
2012.11.27   On Eisenstein’s “Pathos”
2012.11.27   Ph.D. Thesis Summary


<Attraction & Pathos>

<어트랙션과 파토스> 
예술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의 히에라르키를 해체하고, 여러 요소를 원초의 형태로 되돌려, 중립화하고 의미의 때를 벗기려고 하는 것. 중립화된 여러 요소가 각각 대등하게, 그러면서도 개별적 객관의 지각을 공격하고, 뺏는 것. 그 공격의 인자 – 관객의 지각을 자극하고 교란시키는 자극소 – 가 “어트랙션”이라 불리고, 그 효과적 재편성법이 “몽타주”라고 불리었듯이, 어트랙션의 몽타주는, 다른 몽타주와 달리, 충돌이나 비약에 의해 태어나는「파토스」와 유사하다. 또한 「1920년 대말, 그의 기본적인 관심은, 엑스터시 심리학 및 관객에게 생리적으로 작용하는 힘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그 경향은 어트랙션의 몽타주 이론의 흔적이며, 그것은 아직 완전히 극복되지 않은 것이었다 」고 진술되어 있듯이, 어트랙션 이론이「파토스」연구로 심화된 것으로 예측가능하다. 
그 후, 에이젠슈테인은「파토스」이론을 완성시켜가게 되는데, 몽타주 이론과「파토스」이론은 전혀 별개의 것이 것도 아니지만, 한쪽이 다른 한 쪽을 포함하는 것도 아니다. 서로 공통점을 가지면서도, 각각 독립된 이론으로서 성립되어 있다고 간주된다. 「파토스」이론은 정지화면에도 동영상에도 적용되며, 파토스적인 구성으로 영화를 편집하는 것도 가능하다. 에이젠슈테인 자신도, 「영화적 방법에 있어서의 파토스적 구성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한 영화는, 필연적으로 몽타주의 일종이 된다. 
에이젠슈테인 자신도 40년대후반에, 충돌의 몽타주의 원리는 무엇보다도 파토스의 영화술이라고 주장한다. 에이젠슈테인은 파토스란 관객이 “자기로부터 이탈”하는 것, 즉 “엑스터시” 또는 “자신을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자기로부터 이탈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 질적으로 반대의 것으로의 전이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알기 쉽게 정의하면, 파토스구성이란 내용이나 이미지가 비약적으로 변화하는 구성을 의미한다. 그러한 “비약적 구성”이 관객의 정서와 생각을 질적으로 전환시키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에이젠슈테인 이론 중의 파토스가 변증법적 비약과 동일시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그가 주장하는 파토스는 쉬클로프스키나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 효과를 강화시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잘 알려진 사실을 친숙하지 않은 것,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에 의해 질적으로 다른 인식을 얻는 낯설게하기도 변증법적 비약에 기초를 두고있기 때문이다. 
アトラクションとの関連
「芸術を構成する諸要素のヒエラルキーを解体し、諸要素を原初の形にもどし、中立化して意味の垢を落すこと。中立化した諾要素がそれぞれ対等に、かつ個別的観客の知覚を攻撃し、襲うこと。その攻撃の因子 ― 観客の知覚を刺激し撹乱する刺激素 ― が“アトラクション”と呼ばれ、その効果的な再編成法が“モンタージュ”と呼ばれた 」ように、アトラクションのモンタージュは、他のモンタージュとは違い、衝突や飛躍によって生み出される「パトス」に類似する。また、「1920年代末、彼の基本的な関心は、エクスタシー心理学および観客への生理的作用の力に向けられていたが、その傾向はアトラクションのモンタージュ理論(『6巻著作集』第二巻の注釈参照<*23>)の痕跡であり、それはまだ完全に克服されていなかったものである 」と述べられているように、アトラクションの理論が「パトス」への研究に深化したことが予測できる。
 その後、エイゼンシュテインは「パトス」を完成させていくことになるが、モンタージュ理論と「パトス」は、まったく別個のものでもなければ、一方が他方を包み込むものでもない。共通点を持ちつつ、独立した理論としてそれぞれ成立していると考えられる。「パトス」は静止画にも動画にも当てはめられ、パトス的な構成で映画を編集することも可能である。エイゼンシュテイン自身も、「映画的方法におけるパトス的構造 」という言葉を使っている。そのような映画は、必然的にモンタージュの一種となる。
 エイゼンシュテイン自身も40年代後半に、衝突のモンタージュの原理は何よりもパトスの映画術であると主張する。エイゼンシュテインはパトスとは観客が“自分から離脱”すること、つまり“エクスタシー”あるいは“自分を正常な状態から抜け出させるもの”と定義する。“自分から離脱すること”は“何でもない状態になること”ではなく、異なるもの、質的に反対のものへの転移を含めているのである。分かりやすく定義すると、パトス構成とは内容やイメージが飛躍的に変化する構成を意味する。このような“飛躍的構成”が観客の情緒と思いを質的に転換させる効果をもたらす。エイゼンシュテインの理論の中のパトスが弁証法的飛躍と同一視される事が出来るとすれば、彼が主張するパトスはシクロフスキーやブレヒトの異化効果の強化されたものだと言える。よく知られた事実をなじみのないもの、見慣れてない新しい視線から眺める事によって質的に違う認識を得る異化も弁証法的飛躍に基礎を置いているからである。



기법으로서의 영상의 가능성

<기법으로서의 영상의 가능성>

영상에는 시나리오가 있는 영상과 시나리오가 없이 기법만으로 성립하는 영상이 있다. 그것은 문학에 있어서 소설과 같은 영상과 시와 같은 영상이라 비교할 있다. 또한 시나리오가 있는 영상에서도 기법에 의한 표현은 영화 [시민켄] 비롯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영상은 아직 역사가 짧은 분야이지만, 진보는 현저하며, 지금은 카메라의 소형화나 디지털화, 하이비젼화, 모니터의 박형화(薄型化), 프로젝터의 고휘도화 (高輝度化) 개발이 진행되면서, 표현의 가능성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근거로 하면, 영상은 새로운 시좌에서 만들어지지 않으면 된다. 영상의 기술적 발전과 더불어 좀더 새로운 창의력 또한 상상할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상은 발명된 , 영화라는 장르를 만들어 낸다. 영화는 스토리가 있어, 주인공이나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상은 정보성과 이야기성을 시간축의 흐름에 따라 구성함으로서 텔레비젼이나 영화관을 통해 사람들에게 보여진다. 하지만 설명적이며 단순한 묘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꿈과 감동(파토스) 전할 있는 기법들이 무궁무진하다. 이러한 영상의 가능성을 작품으로서 성립시키려는 나는, 이러한 실험적인 시도와 이론의 근거를 검토, 분석하고 있다.



내용과 형식, 주제와 기법

내용과 형식, 주제와 기법

작품의 주제와 내용은 무엇일까? 작품의 형식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영상사나 영상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영상의 내용과 같이 혹은 그 이상으로 형식을 이해해야 한다. 한편,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변하지 않는다. 제작자가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에 어떻게 의식을 향하고 있는가가 작품의 본질을 결정짓는다.

시대에 응한 형식과, 시대를 초월한 문제의식. 이 양자를 중개하는 것이 파토스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제작에 있어서 얼만큼 강한 파토스를 가지고 임하느냐가, 조작이나 기법을 좌우하고, 결과로서 보는 이에게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반대로, 조작이나 기법을 구사함으로서, 제작자 쪽은 스스로가 가지는 파토스를 더욱 극한까지 높여갈 수 있다.

시대에 따라 메커니즘이 진보하는 중에도, 작품제작에는, 민족, 국경, 시대, 자타인식의 차이 등을 넘어서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기술이 격렬하게 변화하는 시대야말로 강하게 그것을 주장할 수 있다. 그 과제는, 에이젠슈테인의 창작 및 연구 활동을 볼 때, 작품이 향수자에게 미치는 효과, 심리적인 작용, 지각의 활성화가 끊임없이 문제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과 과학의 결합이 만들어 내는 것은 "생산품" 또는 단순한 "작품"이며, 그것은 민중전체의 의식을 변혁해 높이려고, 면밀히 계산된」구조를 가져야 했다.[1]」는 것처럼, 에이젠슈테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과제를 극복하기 위한 그나름의 대답이 파토스가 아니었을까.



[1]前掲、『エイゼンシュテイン解読』、316

 

内容と形式、テーマと手法

 作品の主題や内容は何だろう。作品の形式は時代によって異なる。したがって、映像史や映像作品を理解するためには、その映像の内容と同じかそれ以上に形式を理解しなければならない。その一方、人々が直面している根本的な問題は、過去も現在も未来も変わりがない。制作者が普遍の根本的な問題にどう意識を向けているかが、作品の本質を決定づける。

 時代に応じた形式と、時代を超えた問題意識。この両者の橋渡しをするのがパトスである、と私は考える。制作にあたってどれだけ強いパトスを持って臨むかが、操作や手法を左右し、結果として、見る側に様々な感情を呼び起こす。また逆に、操作や手法を駆使することによって、制作者側はみずからが持つパトスをさらに極限まで高めていける。

 時代につれてメカニズムが進歩する中でも、作品制作には、民族、国境、時代、自他の認識の違いなどを越えて共感できる要素が込められ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技術の激しい変化の時代こそ、強くそれが言える。その課題は、「エイゼンシュテインの創作および研究活動を見るとき、作品が享受者に及ぼす効果、心理的な働きかけ、知覚の活性化が絶えず問題にされていることを私たちは知るからである。……芸術と科学の結合が生み出すものは“生産品”あるいは単なる“作品”であり、それは民衆全体の意識を変革し高めるよう、「綿密に計算された」構造を持つべきものであった[1]」ように、エイゼンシュテインにとっても同じであった。課題を克服するための彼なりの答えがパトスのではないかと考える。



[1]前掲、『エイゼンシュテイン解読』、316

 

Tag : 내용과 형식, 주제와 기법


시적효과

 

 에이젠슈테인은 논문 「파토스」의 「피라네지, 또는 형식의 유동성」에서, 피라네지의 후기의 엣칭 「감옥」을, 「그 시대 도시의 무미건조한 건축이 가지는 몹시 산문적인 「경관」조차도 시적 영감에 의해 충만시키고, 마치 시화 詩化 되도록 하는 것 같다 」라고 기술하는 등, 작품에의 승화를, 산문에서 시로 변화시키는 시적효과로 비유하고 있다.
エイゼンシュテイン, 論文「パトス」の「ピラネージ、あるいは形式の流動性」のなかで、ピラネージの後期のエッチング「牢獄」を、「彼と同時代における都市の無味乾燥な建造の持つ、まったく散文的な「景観」をも詩的霊感によって充満させ、詩化するかのようである」と述べるなど、作品への昇華を、散文から詩に変化する詩的効果に譬え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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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우유분리기와 「그랄의 잔」

(1)우유분리기와그랄[1]의 잔

우리는「전함포템킨」의 구성을 분석함으로서 파토스적 구조를 조립하는 경우의 일정한 법칙을 발견했다.
우리는 작품의 개개의 여러요소 또는 여러특징이 끊임없이 질적인 비약을 이루는것 – 그것이 파토스적 작품의 기본적 특징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질적인 비약은끊임없는「광기」, 평소의 「자신으로부터의이탈」ㅡ즉 원숏의 화면, 에피소드, , 작품 전체의 감정적, 정서적인 내용에 있어서, 긴장이 끊임없이 고양되어, 양적으로 증대한 결과, 생기는 것이다
.
우리는 「전함포템킨」 전체의 구성도, , 5막의 각막에 있어서의 구성도 바로 이 도식에 따라 전개되고 있는 것, 그것을 실증할 수 있었다
.
이 공식에 즉하는 구성 자체는, 완전히 직관적으로 생긴 것이며, 테마의 파토스적 체험 자체를 표현한 가장 유기적인 형식으로서 자연히 생겨난 것이다
.
그러나 영화가 완성했을때, 바로 그 자리에서, 그 구성 방법을 연구하고, 해명하고, 공식화하는 것 등, 물론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고, 실제로도 불가능했다
.
더욱이, 무언가 같은 타입의 파토스적 행위가 행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후에 처음으로 그것들 두 개의 처리의 결과를 대비할 수 있다. 그 대비에 의해 양자에 공통되는 어떤 법칙을 발견하여, 그 법칙을 파토스적 구조를 조립하는 일정한 일반적 방법으로서 고찰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
그 뿐아니라, 「전함포템킨」 의 소재자신, 줄거리자신, 테마자신, 그리고 상황 자신이 파토스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이상한 일이지만,  「전함포템킨」 자신을 재료로 해서  「전함포템킨」 의 파토스적 구조의 방법을 탐구하려고 할때, 어느 정도 그럴 듯 하게는 되었다
.
구성적여러수단에의해소재를파토스화하는방법을식별하는일ㅡ그것이이경우, 테마자신의파토스에매몰되어버려, 무척어려웠다
.
그 구성적 구조를 무언가 다른, 파토스적 서법의 영역에 있어서의 실례와 비교하는 것, 그것이 당연히 필요했다
.
게다가 이 경우에 가장 바람작한 실례는, 그자신 (per se)에서는 완전히 파토스적이 아닌 소재가
수의[2]적으로 파토스화되어있는 듯한 예였다!
우리는 영화「전함포템킨」이 완성된 바로 뒤에, 그야말로이러한예가되는영화를만났다
.
그 실례는, 우리가 파토스적 작품 일반의 구조를 분석하기 위한 도움이 되었다
.
그것은, 꼭 콜호즈
[3](집단농장)와 강력한 소프호즈[4](국영농장) -이 우리나라의 경제와 사회주의 건설사업에 있어서 장래, 거대한 역할을 하게된다- 가 막 탄생되었을 때의 시기였다. 그 거대한 사회적 전망은, 창조적인 상상력을 돋우지 않고는 있을 수 없었다.
동시에농업의공업화라는테마자체도, 마음을끌지않고는있을수없었다. 동시에, 공업의 이미지는 우리세대의 예술가사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이미지의 하나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이 과제가, 그 영화에서 충분히 깊게, 또한 바르게 해결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
그 이유는 아마, 이 영화로는 오히려 「기계의 파토스」가 전면에 나타나있고, 집단 경제 형태로 이행하는 농촌심부로서 진행되고 있는 여러가지 과정의 사회적 의미의 인식이 배후에 물러서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그러나, 나에게 관심있는 파토스의 문제를 방법론적으로 탐구하는 분야에서는, 이 영화는 물론 나에게 필요한 영화였다. 아무리 상기의 모든 테마를 완전히 다루고 있지 않더라도 그러하였다
.
그 영화는 「우유 분리기의 파토스」를 제창하여 유명해진 우리의 영화-영화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제작중에는「전선」이라는 가제였다. <*1> 1926~1928) 이었다
.
그 「농업기계나 설비의 파토스화」의 의도에 대해서는, 그 영화에서 우유분리기가 「성 그랄의잔 」<2>에 도전하듯이, 어떻게「내적빛」으로 불탔는가, 그 상태에 대해 (당시 나는 『……왜, 그 스페인 용기가 우리에게 …… 』라고 썼다.<3>)、그 외에 이 영화에 관련하여, 나는 당시도, 그 후에도 극히 많은 것을 썼다
.
영화는, 그 방향에 따라, 어느 일정한 파토스적 효과를 실현했다
.
그 면을 입증하기 위하여, 「목격자들」의 증언 중, 그것에 대하여 공통된 인상을 인용해 보자. 이 영화에 있어서, 스크린에서 끝없이 우유가 흐르는 화면에 대해, 수 많은 인쇄된 반향이 쇄도했는데, 그 목적을 위해, 약간의 것을 소개해 보자
.
우선 먼저, 발뎃슈<4>의 『영화개사』(파리,1935)를 인용해 보자
.
「……소비에트 영화는 개개의 등장인물을 통일적인 전체적 코러스에서 자연자체를 영화의 주인공으로 하도록 변화했다고 하더라도, 하등의 외적이지 않다….자연과 경작자의 노동이란, 의심없이, 이미 2천년간 완전히 잊혀져 있던 가장 고귀한 예술의 테마에 속해 있다.

물론,이유는『농민』소설이 헤시오도스<5>나 베르기리우스<6>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농민』소설들에는, 『게오르기카』(농경시)가 전체로서 창조하고 있는 정밀함과 시적 고향이 존재하지 않는다. 진정한 베르기리우스는, 에이젠슈테인이고, 도브젠코이다.......**
이경우, 그저아름다운사진이라고하기에는불충분할것이다. 시네아스토 (영화작가)가고대의시를그작품에부활시키기위해서는, 그자신이인간과대지와의투쟁의시인, 현대의헤시오도스가될필요가있다 .....


 *
에스엠에이젠슈테인의주ㅡ이경우, 염두하고있는것은, 「전함포템킨」과 「10월」등, 소비에트영화의선행단계에서전형적이었던 「군중」의영화ㅡ바르에뎃슈가그후의 「평화적건설의영화」와구별되어, 「전투적혁명」이라고명명한영화ㅡ이다
.

 *에스엠에이젠슈테인의주ㅡ 「전선ㅡ오래된것과새로운것」의직후에공개된아페도브젠코의 「대지」가염두에두어져있다. 여기에서도브젠코의이작품에언급되어있는것은, 나에게있어서도, 특히기쁜일이다.

다음문장은벨기에의가톨릭지에서고의로인용했는데, 그것도, 이잡지는열광, 엑스터시및파토스의여러문제에, 그야말로특별 ??하고있기때문이다(『라누벨에킵』[새로운사이] 1 , 1930
).
그문장은, 이영화가실현한파토스적효과에대해서, 다음과같이적혀있다ㅡ

「…장중한정서적고양이, 이영화 『전선ㅡ오래된것과새로운것』을끌어가고있다.영화는기계가영감을준경지, 우유,곡물등의대지의은혜(대지의성분의열광)을찬미하고, 찬양하는 (다른 『기계』ㅡ촬영카메라ㅡ도, 우리의눈에영감을준다)......사계의변화,수확, 완전히생생한분위기등의강력한리듬이, 일찍이없이충실한퍼짐을가지고표현되는것에의해, 앞에기술한바와같은대지의성분의열광이태어나있다. 크림의방울, 라이보리의다발, 용해한금속의불꽃등、그모든것들은, 언뜻평범한일상적외견을가진여러현상들의성질에숨은역동적
내적운동의계시이다. 그리고에이젠슈테인의디오니소스적서정*<7>, 이계시를가져온다. 그에의해, 이평범한일상적여러현상들도파토스가넘치는영상에구상화되어자연의장대한여러현상과동등한위치로올라가, 스크린에응결되어, 우리들의눈앞에전개된다…」

*에스엠에이젠슈테인의주ㅡ 「에이젠슈테인의디오니소스적서정」이란!

게다가 『루모아』() (파리, 1931), 다음과같이비판하고있다. 거기에는우유분리기를둘러싼 「평범한」장면이완전한엑스터시의광기의씬으로서보여지고있다!
「…거기에는돌연, 농축되어진우유가크림으로변화한다! 눈이반짝이고, 희색을띤얼굴에서하얀이가나탄난다. 농부마르파는, 수직으로흘러떨어지는크림의흐름을받으려고손을뻗친다.…크림이그녀의얼굴에튄다.…크림투성이의웃는얼굴로, 그녀는밝게웃고있다! 그것을거의동물적이라고할수있을정도의감정적인환희이다.…그녀는지금이라도옷을벗어던지고알몸이되어, 세차게내뿜으며흘러범람하는크림의은총속을, 알몸상태그대로, 뒹굴어구를듯이보인다.…」

여기에서본의아니게, 도브젠코의 「대지」에의한에피소드가상기된다. 상기의발딧슈의『영화개사』는 「전선ㅡ오래된것과낡은것」으로계속되어, 이도브젠코의영화에언급하고있다.
「전선ㅡ오래된것과낡은것」에우유분리기의씬은, 구성적여러수단에의해처리되어, 영화의히로인이지금이라도미쳐날뛰듯이생각되어질정도로, 엑스터시의광기가표현되어져있다. 그러나만일, 도브젠코
[5]의영화의오리지널판에서는<*2>, 같은순간에, 실제, 농부가의복을벗어던지고알몸이되어, 미친듯이헛간안을이리저리날뛰었다.
「알몸의농부」는비평에도쓰여져있듯이, 당연한일이지만 「극도하게적시」되었다. 그것은전적으로당연하다ㅡ집단화로이행하면서어느우크라아나농촌의생활상황내부에서는, 이러한이미지, 이러한행동의 이미지는물론 「이물
[6]」로느껴졌다.
만약영화의줄거리속에, 박카스의축제같은광란이, 아니면러시아 (기독교의일파) 의광신적의식을의미하는표현이무언가있다면, 사태는달라져있었을것이다. 「알몸의농부아낙네」는영화에서분리되어있다
.

*에스엠에이젠슈테인의주ㅡ이불행한 「알몸의농부아낙네」에대해서는, 이전에한번, 그리피스에대한논문 (논문집『그리피스』고스기노출판소,194[5]) 중에, 다른시점에서이지만, 더욱자세하게쓰어져있다<*3>


무엇때문에우유분리기장면의파토스화가, 등장인물들의연기적흥분에중점을두지않고, 구성적인표현수단에중점을두고행해졌는가ㅡ그이유에대해서는이하에분석을행하지만, 그경우이도브젠코의예를염두에두었으면한다.
인용한약간의증언에서명백하듯이, 우유분리기장면을순수하게구성적으로처리하여얻어진궁극적효과는, 「연기적」효과에절대뒤떨어지지않는다.
또한이장면의상항에는, 매우「바람직」하지만, 실제는그와같은상황에완전히적당하지않는듯한광기의이미지조차, 관객의「감각, 감정」속에환기한다
!
이것들의「증언」은, 대채로영화「전선ㅡ오래된것과낡은것」의개개의모멘트, 특히우유분리기장면이가지는충분한「엑스터시적」효과를, 너무충분할정도로입증하고있듯이나에게는생각된다
.
게다가「필름테크닉」(영화기술) (1930)의크라즈나크라우스의
평에서, 그가지적한이영화의묘사적특성을들수있을것이다. 그것은다음과같은특성이다. , 이영화는모든것이, 「극단적으로큰가  (클로즈업), 극단적으로작은가  (롱숏)」그어느쪽의조형적사이즈로표현되어져있다. , 이경우, 사이즈면에있어서이지만, 예의엑스터시의기본적특성이나타나있다. 롱숏이라면「초롱숏」, 클로즈업이라면「초클로즈업」으로 , 모든화면에있어서균형잡힌표준사이즈를뛰어넘고있는것이다.
그러나,  모두그것은, 이미먼옛날에속하는것이므로, 그영화자체안에, 도대체무엇이어떻게일어나는가, 독자에게간단히상기시키는것도아마쓸모없지는않을것이다
.*
[………………………]


 *
원고편자주ㅡ텍스트에는, 이후에에스엠에이젠슈테인의다음과같은주가있다. 『영화 「전선ㅡ오래된것과낡은것」의내용의요약』. 에이젠슈테인은, 이요약을쓰지않았다.

즉우유분리기를둘러싼장면은가장성공한중심적장면이며,영원히그방법자신을전형적으로대표하고있는장면이었다.
우유분리기는, 애당초처음부터, 즉이영화가발생할때부터, 당연히「케치프레즈」이고,  그슬로건아래, 이작품에있어서의영화적방법의특성은「계획적으로」짜맞추어졌다
.
이영화의테마에대해서는, 나자신이, 과거에많은상당히많은글을썼는데<8>, 여기에서는, 우선무엇보다도영화의중심적장면인우유분리기장면이가지는순수히연구적가치에대해쓰지않으면안된다. 이장면에서는, 우유분리기를둘러싸, 우유가「농축하는가? 하지않는가?」라는, 그기대와의혹과의긴박한작용이진행되어, 마지막으로크림의세찬흐름과함께폭발하는환희속에서낙농협동조합에대중이잇달아가입하는것이다
.
여기에서는, 원심력과구심력의법칙에의해, 크림을우유에서분리하는기계가조작되어있다. 그상황에는, 무엇하나외면적인파토스의요소는존재하지않는다. 그럼에도불구하도, 이장면은파토스적장면이되어있는것이다
.
거기에서는, 소재의「파토스화」의과제가절대적으로다음의조건을요구했다., 농축된우유의처음의한방울이분출하는, 그사실적소재에서,  단지구성적표현수단만에의해, 포템킨호와함대와의만남이에피소드와비숫한감동적이고매력적인장면을창조하는것. 함대의포구가발포하는가어떤가? 그대기의불안이가지는것과같은강도의긴장ㅡ그것을크림의처음한방울을기다리는사람들의장면에부여라는것. 그리고곤란한「우유분리기의실험」이기술의승리의영관으로장식되는순간ㅡ그사상을표현하기위한조형적수단을발견하는것
.
거기에는, 병사들의총격으로오뎃사의계단을굴러떨어지는군중의씬도없었다
.
한척의전함을향하여, 전투대형을조직하여,포구을열어서서히접근하는함대도없었다
.
긴장의순간에있어서의기관부의피스톤의울림도없었다
.
기함을선두로전진해온함대가, 한발도발포하지않고, 옆을통과해갈때, 하늘높이던져올려진몇백이나되는수병모의난무도없었다
.
거기에있었던것은, 거의빈집같은낙농협동조합의헛간이었다
.
한덩어리의, 의혹의시선의농민과아낙네들
.
열광적인지지자들세조.....활동분자의마르파라프키나, 브론드의공산청년동맹원, 지구의농업기사
.
그리고, 희미하게빛나는「우유분리기」
.
와동시에, 테마의점에서는봉기된함대의영화의온갖부분과, 어떤거대한「공통성」을가지고있다

 계급적연대와집단주의의 ㅇㅇ적의식이가지는공통의감각. 그것이 「전함포템킨」의운명에있어서의역사적순간의경우에는, 전함과함대와를하나로통일하여, 우리조국의몇백만의농촌의하나에있어서의일상적상황의경우에는, 독립된사적소유자들을단일의집단농촌경영에통합한다는, 마찬가지로훌륭한기적을만들어내고있는것이다.
두개의씬에는, 어느쪽도마찬가지의파토스가일관하고있다는것뿐아니다
.
시대, 시간, 상황, 사건의외견적인규모등의상위에도불구하고, 또하나의동일테마ㅡ집단적통일ㅡ도, 마찬가지로두개의씬으로공통되어있다
.
이러한테마에있어서의혈연적공통성은, 구상화의수법에있어서도유사점을가지는것을필연적으로했다
.
, 그테마에있어서의구성적구조를, 「전함포템킴」과같은폭발의공식, 구조식에근거하여구축시킨것이다. 그것은한계까지달한긴장의결과, 연속하여일어나는폭발의시스템, 마치로케트탄의폭발이나원자폭발에있어서의우란의연쇄반응의경우와완전히마찬가지로, 다음에서다음으로연속하여일어나는폭발의시스템이다
.
또이일이 「전함포템킨」에있어서의크라이막스씬(포격의예기)과같은상황 (농축된우유의처음한방울의예기), 이영화의클라이막스로서설정시켰다
.
그것은, 한결같이 「연쇄반응」의도식ㅡ긴장의축적→폭발→폭발에서폭발로의비약이라는도식ㅡ이전체적파토스의성분인각부분의엑스터시의특징, 즉상황에서상황으로의가장명확한구조도를부여하기때문이다
.
동시에, 거기에는씬의줄거리구상, 상황, 배경, 세부디테일및여러요소등에대하여, 전혀다른소재가존재하고있었다
.
완전히있는그대로 「저절로」처리되어진이씬을,나중에 「전함포템킨」의씬과선입감없이대비했을때이두씬에있어서의파토스의구축방법의근저에있는이공식, 구조식자체의진수가저절로해명된것이다
.

 

이처럼, 나중에완성된두편의영화의대비에근거하여, 정확한공식화가행해졌다.

그러나, 이미전선ㅡ오래된것과새로운것의시나리오작성단계에있어서, 이양씬에계승관계가있다는감각을, 어느정도, 감독자신이가지고있었는가ㅡ그점을지적하는것은, 매우흥미로울것이다.

우유분리기의씬에있어서의파토스의몽타쥬자신에대해서는, 몽타쥬책상위에서처음으로결정되어, 그결과, 추가촬영의필요까지생긴정도이다.(분수, 점점사이즈가커지는수학의타이틀<*4>등등). 그러나한편으로는, 전선ㅡ오래된것과새로운것의시나리오의, 바로이부분으로전함포템킨이직접인용되어있다. 이사실에서도,  전선ㅡ오래된것과새로운것의작성단계에서, 이씬의구성에있어서의내적역학과,  전함포템킨의마땅한여러구성과의관련은, 이미뚜렷이되어있을것이다!

, 우유분리기에서분출하는농축우유한방울을기다리는이씬에는다음과같은보조설명이행해지고있다ㅡ 「……전함포템킨이함대의일제사격을기다린것처럼……」

그것뿐아니다! 처음의몽타쥬적바리에이션에는, 함대와의만남을기다리는포템킨호의씬의단편을이씬에삽입하여, 조형적연상을기다리는적당한대비형 (컨트럭티브)으로서의것조차있었다!

그러나이단편은, 그효과가매우시시하고, 비유기적이었기때문에, 감독자신에의하여곧그자리에서잘라내었다.

내면적인비유적이미지의연상은, 외면적수단에의해극단적으로강조되면, 항상이러한불가피적숙명을짊어지는격이된다.

그러한연상적수단은, 연상자체와마찬가지, 순간적으로의식적으로닿는경우에만, 생생하게유기적일수있다.

예를들어, 이우유분리기씬에서, 전함포템킨에서삽입되어, 곧절제된단편과는달리, 생생한유기적이었던예가있다.  그것은우유분리기의부리의각숏에서, 그것들은전함포템킨에서스크린에서관객석에향하여감각적으로쑥내민, 그공포의포구와조형적으로닮은형태로촬영된것이다.

 

  * 에스엠에이젠스테인의주ㅡ다음의사실을상기하는ㅡ모스크바의극장과베를린의극장(바나드쇼의희곡상연) 중에서, 이것과같은관객석을향한포신,폭구의효과가이용되었다. 모스크바의경우, 몇문의대포를마련한함수전체가관객석에향해이동했다. 베를린의경우, 한문의대포의긴포신이관객석으로뻗어왔다.

 

 

 (이러한촬영방법은, 완전히영화자체의공통의문체였다. 영화속에서, 이런수법이드러나, 비꼬여이용되었다.

다른하나의「머신」 ㅡ 「관료기구」ㅡ를풍자적으로폭로하기위해서라도, 마찬가지로, 스크린가득넓혀지는거대한타이프라이터의캐리지가촬영되어있다. 그것은카메라를향하여이동하고, 정체를 「폭로」할때까지는, 무언가거대한공업건설지의크레인처럼보인다.)

 

이조형적트릭자체도또한, 영화전체에넘치는조형적표현수단의시스템에완전히속하고있다.

즉영화의이씬에있어서, 대물렌즈[7] 28미리」가피사체를조형적으로테포르메시켜표현하는힘이처음계획적으로이용되었고, 극히자세하게음미되었다.

이대물렌즈가가지는특성ㅡ전경前景에있어서의거대한크로스업의세부(디테일)도, 후경後景에있어서의깊은깊이도, 동시에같이선명하게촬영하는특성ㅡ은잘알려져있고, 단순한표현을위해누차사용되고있다.

그러나, 대물렌즈「28미리」의이특성은, 다른하나의특성을동반하고있다. 그것은, 그때까지의사람들이될수있는한피해지나가려고하고, 20년대말에는그경향이극점에달한특성이다.

그것은대물렌즈「28미리」의원근법적데포르메의능력이다.

이대물렌즈를사용한경우, 심부에있는여러사물은우리들에게익숙한표준적비율에대해격하고가속적으로원극법적축소를표현한다는, 그특성이다.

전경前景의여러사물이대물렌즈에대단히접근하고있는경우에는, 그특성은극히명료하게눈에들어온다. 카메라를향하여, 같은하나의사물의한쪽끝이날카롭게돌출되어있는경우에는, 한층더명료하다. 예를들어, 옆으로누운인간을발바닥에서촬영한때의관객을향한이상하게도거대한발바닥, 또는머리는위쪽으로, 다리는아래쪽으로, 각자멀리」보이지않는인물의, 카메라에접근하여, 관객을향하여돌출한크게활을그리는거대한배등은, 그예이다.

노출」의강도에는차이가있더라도, 대물렌즈「28미리와같은능력이, 이영화의표현수단의시스템에짜여질수밖에없었던것은, 더할나위없이당연한것이다.이영화의테마는콜호즈원이된농민들에대해서이고, 그테마의토대를성립시키고있는것은자기로부터의이탈」ㅡ어떤상태에서다른상태로의이탈ㅡ이었고, 이일이또, 모든특징에있어서자기로부터의이탈이라는엑스터시의공식에준하도록, 여러표현수단의방법론을기정하고있었던것이다.

이영화에서는, 대물렌즈「28미리의데포르메능력이모든뉘앙스에서적용되어있다.

어느경우에는,  그것은자연의리얼한형식을아주조금변형시켜양감을증대시키기위해행해졌다. 예를들어마르파가경작용으로부농의말을빌리거가서거절당하는데, 그두마리의말의엉덩이가그러하다. 거절당한결과, 마르파는그시대의뒤떨어짐의틈을자신의수컷소에게끌리게되었다.  이말들의엉덩이를비교하면, 가냘픈빈농의여자마르파는, 완전히작고무력하게보인다.

그리고, 어느경우에는, 대물렌즈의데포르메능력이보다노골적으로응용되어있다....... , 하나에는고골리적」확장때문에 (예를들어, 자고있는부농의몸을발에서머리로향해촬영한만테냐풍」<9>),  다른하나에는모뉴멘트화를위해ㅡ예를들어수컷소의결혼」씬에서는, 수컷소의각자의자세를찍거나, 소의뒤에서머리의뿔쪽으로카메라가향하거나할때, 종심적深的인촬영이행해졌다. 이씬은반신화적인거대한수컷소로화신하여에우로페를유괴한쥬피터를상기시킨다! <10>

그리고마지막으로는, 전술의타이프라이터에대해서, 우선원시적인신비화」에성공하여, 그후태도」의확장된풍자적폭로」가계속된다.

아무튼, 대물렌즈「28미리」는이모든것들의경우에ㅡ여러정도와명확함에있어서이지만ㅡ사물이……자기로부터이탈」하는것, 즉자연이사물에부여한사이즈와형식의윤곽외로, 그사물들이이탈하는것, 그것을항상도왔다는것이다.

그리고또, 여기에도독특한조형」속에인간의테마가울리고있었다. 인간은ㅡ새로운사회조건의여러요소속에서ㅡ공업력을빌려, 자기의창조적의지에의해몇세기나걸쳐고정된농촌생활의치우痴愚(마르크스)의여러요소와여러형식을, 사회주의적농업의새로운형태, 형식, 그리고질을향해자기로부터이탈시키는것이다.

영화전체를이시점에서관찰할때, 우유분리기의씬이내면적인선으로서」, 완전히명확한사상적파토스적테마를가지고있었다는것이명백해진다.

게다가, 그뿐아니다. 우유한방울의운명적가치를구상화한이씬이중심적인에피소드로선택된것을, 물방울로비약하도록크림의방울이라는새로운질로비약한다.그것은어쨋든마치산산히분산되고, 분리되어농업을경영하고있는, 한단체의개인농들, 그운면을구상적으로반영하고있다. 그들도또, 우유분리기 (기계화농업의가능성의상징)의영향에의해개인농업에서집단농업으로향하는사회발전의형식에따라, 돌연, 위대한질적비약을이루고, 「백성」에서콜호즈원으로변화한것이다.

이것과동시에. 순수한외면적여러특징에서보면, 봉기된전함의파토스의문제를배워 「우유분리기의파토스」의문제를제기한것자체,어떤종류의파라독스(역설)을포함할수밖에없었다.

과제의제기자체에포함되는그러한파라독스에의하여, 닮은의도를구상화시키는수단의분야에있어서도, 어떤종류의파라독스를불러올수밖에없었다.

전술한바와같이, 이경우의파라독스는, 오히려외면적인것으로, 본질적인것이아니다. 그러므로당연하지만, 이러한파라독스는구상화의영역에있어서도, 구성의가장외면인여러요소를윤색시킬수밖에없었다.

이러한일은구성적구조의전체를, 특히알기쉽게하고있다. 이경우, 적용된여러수단의파라독스가, 파토스의 「구축」방법과, 그여러수단의성질자체를마지못해 「폭로하고있기」때문이다.

그덕분에, 「전선ㅡ오래된것과새로운것」은 「전함포템킨」과비교하여, 연구상, 훨씬유리한점을가지고있다. 「전함포템킨」의경우에는, 파토스적작용의여러수단이작품의짜임자체속에유기적으로깊게들어가있어, 다른케이스나예와는비교라도하지않으면, 한눈에보기만해서는그것을완전히식별할수없기때문이다.

지금, 이두편의영화를배열하여회고하고, 고찰해보면, 이「우유분리기의파토스」를둘러싼대소동의모든것은, 파토스적구성의성질의해명을과제로하는연구적실험이라는유일한목적을위해, 일부러만들어진것처럼도생각된다!

실제에는, 물론전혀그렇지않다.

영화를만들고있을때는, 형식적과제나수단은거의염두에없다.창조적파토스는, 오로지유일한것ㅡ즉, 모든있어야할수단과, 있어서는안될수단과에의해외견상은무미단조無味調하고평범하게보이지만, 본직적으로는콜호즈건설이라는가장파토스적인사상을동반하는농업적테마를파토스로까지높이는일ㅡ에향해진것이다.

우유분리기는, 그내부에서돌연발광하는듯이보여, 마치테마전체도, 테마에대한태도관계도, 함께그안에응축凝縮시킨중심적이미지인것처럼존재했다.

이과제를실현은, 모든「있을수있는수단과, 있을수없는수단べき手段と、ありべからざる手段에의해행해졌는데, 사실이보여주고있듯이, 그때가장좋은표현수단이되어있는것은, 틀림없이……「있을수없는ありべからざる」파라독스적인수단이었다.

이씬을환희의엑스터시에까지「높이는것」은, 우유분리기를둘러싼씬의환경과재료자체에서추출된여러수단만에의해서는물론불가능하며,성공하지못했을것이다.

이환경자체가가지는표현수단과, 그가능성의한계에서비약하는일이필요했다.

완전히똑같은일이오뎃사의계단의피날레에서도일어나고있는것을우리들은이미보고있다<*5>. 거기에서는총격의상황자체에관련된표현수단이모두다이용된다음으로, 그들의표현수단의원리자체가, 이차원異次元으로ㅡ드라마적상황의차원에서은유(메타파)의차원으로ㅡ비약하고있다(상기참조)는것이다.

여기에서당연히. 다음과같은의문이일어날것이다ㅡ왜우유분리기를물러싼환희의엑스터시씬을순수하게연기행위만으로처리해서는안되는가?

그이유의첫째는,  이경우의테마로되어있는것이내면적인사상적승리로, 기적을앞으로하고일군의사람들을とらえる디오니소스적인야단법석이아니기때문이다.

일상적으로흔한외면적행위에의해서가아니고, 흔한일상적행위이외의무언가가다른이차원異次元의수단에의해, 이씬을처리하는내면적인필연성은무엇보다도가장이이유에의해기정되어있다.

게다가또하나의사정이, 여기에더하여진다. , 이경우, 행위자체에표현되어있는엑스터시적환희가나타내는실제의진폭振幅은극히얌전한것으로, 거의역동적인것이아니다.

우유분리기를둘러싼, 禿(はげ)一夜<*6>풍의춤이자연발생적으로생긴다고하자. 그것은낙동협동조합이라는환경에서부터도, 우리들의백성의사려깊은검소한성격에서부터도, 완전히부적당하며, 어이없도록불합리할것이다. 백성이일상생활에서우유분리기와처음만났을때, 내부에환기되어지는감정의영역과는전혀다르다.

긴장된레벨의격정, 자연발생적인야단법석이그를격렬하게とらえる것도아닌한, 그럴것이다.

만약, 우리들의눈앞에, 지팡이의일격으로황야의낭떠러지에서물의흐름을쳐서나오게한모제<11>, 갈증에괴로워하고, 그흐름에쇄도한수천명이나되는군중의씬이있다고하자.

아니면, 성서에있어서의황금송아지를둘러싼배교자들의난무<12>의씬, 열광적으로사벨로자신의육체를상처내는몇백명이나되는광신자의, 샤후세이바후세이의씬, 또는러시아편신교?의광신적의식<14>의씬이있다고하자.

ㅡ이경우, 그곳에는행위자체의엑스터시를통해파토스로받아들어지는대군중의훌륭한영상이전개할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아니다!

이미우유분리기를둘러싼씬의직전에는, 이영화의내부에서엑스터시적행위의모든수단이, 이미다이용되어있다.

우유분리기의씬에는, 한발旱魃로완전히메마른들판을가는농민들의세례행렬과비오기를비는 雨乞 씬이선행하고있다.

P57

이씬에서는,농민들의거칠고광신적인종교적엑스터시가, 완전히해방되어있다. 그들은무릎을꿇고천천히앞으로나아가면서, 허리를굽히고무거운성서화(이콘)을옮기면서, 말라붙은대지의모래먼지투성이, 하늘을향해허무하게통곡하며, 기적적인단비慈雨의축복을간절히원한다.

파토스와엑스터시에있어서의이다른두가지의세계ㅡ오래된세계와그것을근절하는새로운세계, 신비적인자연력에대하여무력하게예속하는세계와맹목적인자연력에대립하는기술을준비한조직적인세계* ㅡ를충돌시켜, 대치시킬필요가있다.

  *에스엠에이젠슈테인의주ㅡ넒은의미의낙농경영및목축에는, 그본래의의의와함께, 농업경영을천재의피해에서경제적으로보호하기위한, 일종의자위형태로서의의의도포함되어있다.

 

그리고, 엑스터시와파토스라는두개의다른본질의내적대치도, 구상화하는수단의다른시스템을요구했다. 대치된이두가지의씬을구상화하는표현수단은, 당연히각각이작용수단의다른영역, 다른차원으로분화되었다.

세례행렬과비오기를비는것雨乞, 기본적으로인간의행위/행동에의한연기적ㅡ연극적이라고도할수있을지도모른다ㅡ작용수단을택했다(그때, 물론, 그범위안에서허용되는영화적방법의모든수법도무시하지않았다).

우유분리기의씬은, 다른예술에서는형식에있어서도규모에있어서도불가능한, 순수하게영화적인수법과능력에기본적으로의존했다.(그경우, 물론, 이씬에불가결한행위/행동및연기의여러요소도무시하지않았지만, 그러한여러요소는극단적으로눈에띄지않게, 억제하며표현하였다).

이러한표현수단의분화파토스적구성 (우리들은이미그것을알고있다)의시점에서, 또다른깊은의미를가지고있었다. 이시퀀스에서는, 두가지의표현수단의시스템이, 이처럼연속되었다.

거기에는이전의하나의차원에서다른차원에의이동(비약) ㅡ즉연기적영화의방법 (연극적영화적방법의차원에서영화적방법이외에는존재하지않고, 다른것이흉내낼수없는영화적방법독자의수단과능력의영역, 순수한영화적방법의영역에의이동(비약) ㅡ이존재했기때문이다.

표현수단의시스템전체가,2권의거의중앙에서전함포템킨과완전히마찬가지로그것과대립하는이차원異次元의새로운시스템으로이동하여, 비약하고있다.

표현수단의시스템전체가, 「제 2권의 거의 중앙에서」(「전함 포템킨」과 완전히 똑같이), 그것과 대립하는 이차원異次元의 새로운 시스템으로 완전히 이행하여, 「비약하고 있다」.

그럼, 우리들이 여기에서 극히 자세하고 신중히 서론적인 고찰을 더한 바로 그 구조과정자체, 도대체 어떠한 것이었을까?

 우유분리기 밑에 놓여진 나무통을 향하여「농축되어진」우유의 최초의 한 방울이 튀어나가는 순간까지*, 긴장의 작용은, 온갖 몽타쥬 기법의 여러 기법에 의해 짜여져 있다.

  *에스엠에이젠슈테인의주ㅡ덧붙여서, 여기에서잊어서는안되는것은다음의내용일것이다. , 이씬의순수히물적物的인측면에도,「보통의」우유가질적으로고조되어우유제품-크림-으로비약한다고하는「파토스적」제재가포함되어있는것이다!

 

그것은일련의클로즈업에의한것으로, 몇명의그룹에서 2-3명의인물로, 2-3명의인물에서개인까지점차확대해가서, 의문과기대, 의혹과확신, 단순한호기심과숨길수없는흥분등의작용을낳는다.

이러한얼굴의시리즈를절단하는것은, 히로인인마르파라프키나, 농업목사, 공산청년동맹원와시카등의쇼트이다.

우유분리기의회전하는원반류나, 여러방향에서촬영된부리筒口의클로즈업이, 운동을이어받는다.

「의혹의작용」이마치우연인것처럼, 거의눈에띄지않게촬영의톤을따라, 반복한다<15>.

증대하는기대를표현하는각쇼트는, 마치우연처럼거의눈에띄지않게차츰밝아져, 한층깊어지는의문을표현하는각쇼트는점차어두워진다.

템포의증대와함께, 각몽타쥬단편은점차짧아져, 밝은화면과어두운화면과의교체는점차빈번해진다. 원반류는끝임없이속도를높이면서회전하고, 그회전에이어지는몽타쥬단편에있어서의빛의변화는, 원반류의클로즈업화면을현실에서달리는「광점」으로변화시킨다 (거울의파편을붙여맞춘회전구를사용하는기술적기법에의해).

 

필요할때는우유분리기의부리가이몽타쥬단편의모든시스템을단절한다. 필요한횟수만큼, 절단의그순간에있어서의부리는공허한것이다. 그러나, 적당한순간에는, 부리의하단에방울이부풀어있다. 

 

 (얼굴의클로즈업이교체되어달아난다.)

부풀은방울은, 필요한시간만진동하고있다.

 (우유분리기의메커니즘의원반류가급속하게회전한다.)

이윽고방울이떨어진다.

 (원반류의회전에절단되어지면서클로즈업이달아난다.)

방울이부리를떠난다.

낙하한다!

 그리고 텅빈 통의 밑바닥에 닿아, 아주 작은 별모양의 물보라를 일으킨다.

하얀 농후한 크림은, 어느새 억누르지 못하고, 격심한 기세로 우유분리기에서 탈출하여, 그 통의 바닥을 친다.

 이미 우유분리기의 세찬 흐름과 물보라는 순백의 밀크의 폭포가 되어, 격심한 은색의 분수가 되어, 활발하게 튀어오르는 물보라의 불꽃이 되어, 유정천有頂天으로 환희한 사람들의 얼굴의 크로즈업을 몽타쥬적으로 꿰뚫는다.

 그리고 처음에 물보라를 일으킨 우유의 한 방울이 우유의 세찬 흐름의 몽타쥬로 폭발한 결과, 그 몽타쥬 속에, 말하자면 관계없는 소재 빛으로 가득찬 분수의 물기둥 가 얽혀짜이지만, 그것은 마치 우유의 세찬 흐름에 반응하는 것처럼, 본의 아니게 스크린상으로 나타나는 비유이다.

다시 「전함 포템킨」의 경우와 같이, 우유분리기에서 분출하는 우유의 「분수」와 같은 은유가 등장해,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 은유는 물질적 행복의 심볼인 「우유의 강과 젤리의 물가」(도원경桃源境 유토피아)라는 민속학적인 이미지와 닮았다.

그리고 다시 「전함 포템킨」의 경우과 같이, 운동의 격렬함이 증대하여, 운동은 다음의 더 높은 차원으로 비약함(분수는우유의분류보다도강하게분출하여, 보다밝게빛난다!)과동시에, 서술방법자체의내부에서도, 마찬가지로차원에서차원으로의비약이생긴다……, 현상적서술에서은유적기술로의비약이생기는것이다.

 

그러나몽타쥬는, 여기에그치지않는다. 몽타쥬는새로운이행, 새로운이미지- 「불타는불꽃」의이미지로새로운비약을이룬다.

몽타쥬는, 우유의세찬흐름의반짝임보다뛰어난분수의반짝임을더욱받아,그반짝임의단계를한층격한새로운반짝임의차원으로승화시킨다. , 더이상하얀빛으로격렬하게불타는것만이아니다. 불꽃의반짝임으로승화시켜, 다채로운빛빛의새로운질인색채으로격렬하게불타날아오른다.

 

이 구상을 실현하는 기술적 기법도, 역시 「전함 포템킨」의 붉은 기를 손으로 채색한 기법의 연장이었다.

 불꽃의 이미지에서, 변화하는 다채로운 색채성의 요소만이 추출되어, 채색의 기술적 기법에 의한 진짜 색채의 범람에 의해 몽타쥬의 개개의 쇼트에 있어서의 분출하는 물기둥의 다양한 색채적 커브에 의해 그 색채성의 요소가 구현되었다. 태양빛으로 빛나는 분수의 여러 몽타쥬의 단편들은, 다른 차원 다채로운 색채적 빛 으로 비약했다. 그것은 낮이 밤이 되고, 수많은 투광기에서 여러가지 색채의 광선이 광장의 분수로 덤벼들어, 그 때문에 분수의 물기둥군이 여러가지 색채의 불꽃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그 모습과 닮았다.*

 

*에스엠에이젠슈테인의주이 같은 영화속에, 보통의 교미라고 하는 「일상적」정경이다. 牡牛結婚」의 격정적 순간에도, 한번 더, 같은 단편이 색채의 폭발의 짧은 몽타쥬의 형태로 등장한다.

 

 그러나, 씬의 몽타쥬적 「광란」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이 색채적 단편들이 잠시 스크린 위를 아찔할 정도로 반짝인 뒤, 또 무색의 단편으로 이행했다.

색채적 단편에 있어서 무색으로의 비약은, 다시 한번, 새로운 질로의 새로운 비약인 것이다!

 그렇다고 하는 것은, 이 경우의 무색에의 비약은, 모노크롬 사진이 회색의 여러단편으로 복귀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색채적 여러단편은 새로운 무색의 단편의 시스템으로의 비약했지만, 그 시스템은 회색의 모노크롬사진의 색채가, 마치 반으로 분열된 것같은 단편의 시스템인 것이다……, 마치 싯꺼먼 땅과 그 위를 달리는 새하얀 번개라고 하는 두개의 부분으로 분열한 것같은 단편의 시스템으로 비약한 것이다.

「전함 포템킨」으로 비교해보면, 여기에 보여지는 것같은 회색 톤의 분열은, 마치 「슈프레마티즘」<16>의 철저한 비구상적인 추상성인 것 처럼 들린다.「전함 포템킨」의 경우, 그 분열은 전함과 함대와의 만남의 전야, 그 야경에서 검은 수면에 등불燈火 비추어지는 그 구상적인하얀섬閃光 범위에 멈춘다.

 

 그러나, 그것 뿐아니다. 「전선ㅡ오래된것과 새로운것」에서는 하얀 지그재그가, 그러한 선화적인 추상화면의 검정을 배경으로 해서, 단편에서 단편으로 비약하고 성장하고 복잡해져 간다.

 그것은 색채 처리의 새로운 조형적 전환이었다…… 모노크롬 사진에서 화려한 색채가 타올라, 그것이 다시 단조로운 회색으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흑색과 백색의 순수한 선화전진한 것이다.

 그것과 동시에, 조형적 시스템 자체는, 구상적묘사성의 영역에서, 그것과 대립하는비구상적비묘사성의 영역 生地을 달리는 하얀 선화적인 지그재그 로 비약했다.

그러나, 그것 뿐아니다. 조형적인 비구상적비묘사적인 하얀 지그재그는 점차 커져, 이윽고 새로운 질 - 묘사되는 구상적 사물의 양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호의 의미에 의해 표현되는 성장의 관념 을 가진다.

그렇다고 하는 것은, 그 지그재그는 그저 외면적인 사이즈만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 지그재그가 표현하는 양의 내면적 가치가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 하얀 지그재그는그 사이즈만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5-10-17-20-35, 점차 성장해가는 아라비아숫자로서, 그 내면적 가치도 성장해 갔다. 이 숫자들은, 그 윤곽의 조형적인 사이즈가 증대하는 것과 동시에, 그 수치가 증대함으로서, 낙농협동조합에 가입한 사람 수를 우쭐대며 점차적으로 연속적인, 전신기처럼 밝히고 있었다.

 여기에서는,유동하는 분출의 운동에 있어서의 동적인 단편으로 바뀌어 부동不動 숫자에 있어서의 연속하는 정적인 단편군이 역동적으로 몽타쥬되어, 그 때문에 전신기의 「단편음断片音」의 효과가 얻어졌다.

 이 경우는 특히 흥미롭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그 자신부동의 짦게 절단 되어진 정적 단편이 연동적으로 몽타쥬됨으로서, 최대한의 다이나미즘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씬의 피날레는 하얀 지그재그가 끊임없이 윤곽의 사이즈를 확대시키면서, 몽타쥬적으로 교체해 생생한 역동성을 보인다. 그 역동성이 동시에, 그 윤곽내에 숫자기호에 의한 양적성장의 관념을 동반하고 있다. 그것에 의해 파토스의 기본적 성질, 엑스터시의 상태에 있는 인간의 감각과 의식이라는 두 영역을, 단일의 충동으로 융합하는 것을 실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낙농협동조합의 가입자수 에 대한 궁극적인 추상개념은, 이 씬에서는 반대로 감각적인 화상画像의 분방奔放한 표현 속에 휩쓸려 있다. 그 수에 대한 추상개념은, 이러한 감각적인 화상 속에서 씬의 전개에 따라, 사실에서 이미지 ,이미지에서 관념으로, 각 단계를경과한다. 그리고 관객을 감각의 영역에서 개념의 영역으로 이끌면서, 그 두 영역을 단일의 파토스로 융합해 간다.

 이렇게 하여, 이 씬의 피날레는, 가장 짧은 필름의 단편으로, 실제로 발생하는 감각에서 개념으로의 형성과정을 재현했지만, 물론, 나름대로 깊고 강하게, 관객의 의식 및 감각감정으로 작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서, 딱 여기에서, 전술한 내용 뒤에 탈선하여 다음과 같은 가정을 기술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울 것이다. , 만약 우리들 앞에서, 그것과는 반대의 경우가 일어난다고 하면, 도대체 어떤 일이 될 것인가라는 가설이다.

 만약 윤곽의 그림과 내면적인 의미와의 사이에, 완전히 불가분한 융합이 일어나지 않고, 전혀 그 반대라고 하자. 그 곳에는, 강인하고 부자연스러운 융합덕에, 제멋대로인 「정면」충돌이 일어나, 본질과 기호와의 사이가 완전히 「이분二分」되어, 완전히 「분해」할 것이다.

파토스의 원리와 반대 구조는 파토스와 반대효과 , 희극적이고 우스꽝스러운 효과 를 부여한다는 가설이 있는데, 이상의 경우는, 그 가설의 완벽한 증명이 되는 것 같다.어떤 상황일 때, 인간행위의 내부에서, 이러한 기호와 의미와의 분열지각에 있어서의 이 생기는지? 우리들은 알고 있다.

 그것은 격한 「쇼크」의 순간에 일어난다.

 그 훌륭한 규범은, 다른 장소에 있어서, 다른 시점에서 인용하고 있다.<17>

 이러한 차원의 심리적 관찰은, 물론 레프 니콜라에비치 톨스토이와 같은 위대한 분석자의 펜만이 잘 기술하는 것이리라.

 실제로, 『안나 카레니나』에는 우리들이 바라는 기술이 있다.

 그것은, 안나의 임신 소식을 들은 우론스키가, 의미도 없이 시계의 문자판을 응시하고, 바늘의 상태와, 지금 몇 시인가라는 관념과를 연결시키지 않고 있는 유명한 장면이다<*7>.

 그러한 상태일 때, 인간은 「자기 안에 없다(정신이 무너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자기 안에 없다(정신이 무너졌다)」는 상태는, 더욱 날카로운 풍자적 형식 - 「자기의 접시 속에 없다(기분이 안 좋다)- 또한 당연히 예상시킨다. 그러나, 확실히 「우리들을 고양시키는」적극적이고 파토스적인 「자기로부터의 이탈」로 비교하면, 반대의! 소극적이면서 쇠퇴적인 측면이다.

「쇼크」자체가 가리키는 것은, 이미 확립되어 그 때까지 확고부동하고 불가침한 것으로 보인 「사물의 질서」와 상태가, 어느 순간에 돌연「로프가 잘리어」떨어지는 듯한 질적비약을 반영하는 뒤틀린 거울상이다.

 이러한 상태의 구성적 원리로의 반영이, 「안티 파토스」로도 불리는 효과를 주는 것, 그것은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안티 파토스」라고 하는 용어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부드러운 유머」 또는 「선량한 엷은 웃음」이 아니라, 얼핏 희극이지만, 본질적으로 깊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 (아마 비극적이기 조차한) 현상이다.

 우리들은, 이 점에서 특히 좋은 상황에 있다. 그것은, 이 경우, 딱 이러한 기호와 의미의 분열상에 조립된, 진정으로 희극적(즉 상기의 의미에서 희극적)인 상황의 구체예를 인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의 구체예라고 하는 것은, 최근 가장 화제가 된 희극작품이다.

 그것은 「채플린의 독재자」중의 극히 날카로운 심각한 풍자적의미를 가진 수많은 씬 중 하나이다.

 체플린이 연기하는 작은 남자의 이발사가 돌아와, 그의 작은 이발소의 유리에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칠한 뭔가 기묘한 모양의 하얀 지그재그를 열심히 지우려고 하는 씬이 그것이다.

그러나 실은, 이 기묘한 지그재그는 기묘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매우 불길한 것이다. 그 지그재그는 J,E,W 라는 문자 즉 연결시키면「JEW(유대인)을 의미하는 문자이다. 회사나 공장의 유리창에 쓰여진 그 문자는, 파시즘에 의한 인류박해의 이미지와 심볼인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본질적으로 그 깊은 내면적인 의미에 있어서, 작은 남자의 이발사가 착각한 대로의 기묘한잡소리로, 낙서의 더러운 진흙 덧붙어말하면, 피투성이의 더러운 진흙인데 에 불과하다.

 그렇게해서 지그재그의 윤곽과 그 내용과의 「외면적인 분열」은, 심부深部의 의미에 있어서 다시 통일된다. 그리고 상황의 명백한 외면적 희극성을 통해, 그 씬의 사회적인 배경이 가지는 진정한 본질을 정서적으로 감득(感得)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여기서 우리들은, 방치해 왔던 우유분리기에 돌아서서, 증대하는 수의 「기마행렬」의 진행 씬이 본질적으로 나아가또 하나의 「방해물」을 뛰어넘는 것, 주제의 서술방법과 수단의 영역에 있어서의또 하나의 비약을 실현한다고 말할 필요가 있다.

 먼저, 사물의 구상적 제시에서 비유적인 이미지적 서술로의 비약이 있었다.

그러나 「숫자의 기마행렬」은, 더욱 진행해 간다. 그리고 구상적묘사성의 영역에서 비구상적 비묘사성의 영역으로의, 2의 비약을 종료한 후, 비유적인 이미지적 서술의 영역에서 개념적서술의 영역으로, 결정적인 제3의 비약을 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양의 관념이 순수한 개념, 즉 숫자의 표시에 의해 표현되어 있어, 「대중적 씬」의 구상적인 제시에 의해서도, 강의 흐름처럼 콜호스에 「합류하는」농민들의 「분류奔流[9]」라는 비유적이미지의 은유에 의해서도 아니기 때문이다.

 

  *에스 엠 에이젠슈테인의 주 이러한 처리의 예로서는, 예를 들어 푸도후킨의 「어머니」의 마지막 권[10]에 있는 이동하는 사람들의「분류奔流」와 격렬하게 흐르는 유수流水와의 평행 몽타주적 씬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에 응하여, 구상적인 묘사의 화면 계열도, 흑백의 숫자 타이틀의 계열로 비약한다.

 표시 숫자가 수치의 증대에 대응하여 사이즈가 증대한다는 작용 그것이 그 숫자들의 추상적인 양의 개념에 완전히 감각적인 역동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것이 선행의 감각적 이미지군과 후속의 추상적 개념군과를 결합하는 마치 이행적 요소가 되어있다. 그것은 당연히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도 대단히 흥미롭게, 이러한 복잡하고 교묘한 수열의 도식을 조립하는 것에 대하여, 감독은 여기에서도 완전히 직관적으로 작업을 행하고 있다. 파토스적 작품이 구성되어지는가? 테마가 파토스에 파악되었을 때, 작품의 파토스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 감독은 여러 원리에 대한 이론적 인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것과 동시에, 영역에서 영역으로, 차원에서 차원으로의 비약, 이행의 시스템 자체, 증대하는 긴장의 극히 엄밀한 질적계열의 한 걸음 한 걸음에 있어서, 거의 숫자적 엄밀함을 가지고 지켜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전선ㅡ오래된것과 새로운것」와 「전함 포템킨」중에, 파토스적 구조의 두개의 케이스가 이미 존재했다는 것이다.

다른 상황, 다른 재료, 다른 주제*를 취급하고 있는 이들 두 개의 케이스를 대비함으로서, 이 실제들의 「영감적」인 과제를 처리하는 부분적인 케이스에서, 파토스적 구조의 여러 법칙과 여러 원리가 극히 용이하게 추출된 것이다. 이 여러 법칙들과 원리들 중에는, 작자의 파토스적 감각, 감정이 파토스적 구조의 구체적인 형식들로 번역되어, 유기적인 형태가 되어 넘처나고 있다.

*에스 엠 에이젠슈테인의 주 - 덤으로 전술한 바와 같이, 한쪽의 재료는 그 자신에 있어서」 뿐만이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파토스적인데, 다른 쪽의 재료는 계획적인 구성적 파토스화」를 명확히 필요로 하고 있었다.

 

전 장은, 그 여러 원리의 설명에 해당했던 것이다.

 

*       *         *

 

「전선ㅡ오래된것과 새로운것」의 파토스적 구성을 분석한 이 장을 보완하여, 다시 한번, 독자의 주의를 앞부분의 순간으로 가끔씩 돌리고 싶다. 그 순간이라는 것은 보통 (「회색)의 사진단편에서 색채적 단편으로, 그리고 더욱 더 색채적 단편에서 다시 무색의, 그러나 이미 「회색」의 단편이 아닌, 백색과 흑색의 부분에 확실히 구분되어진 단편(숫자 타이틀)으로 비약하는 그 순간이다.

[......]우유분리기의 씬에서는, 「회색-다채색-,흑색」의 색채적 도식을 겨우 몇 미터의 길이로 도달하지만, 필자 자신의 작품 - 「폭군이반」 - 의 색채구성에서는 그것이 증폭되어 <18>, 대규모로 확대되어 재현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는, 우선 스타리츠키 집안에 있어서의 이반 암살의 모의 씬 필름이2권이, 강조된 회색의 음계에 지배되어, 그 다음, 알렉산드라 마을의 궁전에 있어서의 술잔치 씬 필름2 권이, 다채색의 「불꽃」에 지배된다. 마지막으로, 교회에 있어서의 우라디미르 알레드레비치 암살 씬의 역시 필름2권이, 모두 검은 색(죽는 운명에 있는 우라디미르 공의 비단 옷의 반짝이는 무늬와, 친위군이 손에 쥔 촛불이 이동하는 광점과에 가로지르는 검은 색조)에 지배되는 것이다.

이러한 색채는, 회색과 백,흑색과의 분수령으로서 「침투」하지만, 「침투」는 그 자체로서, 폭군의 이야기에 있어서, 전혀 색채가 없는 제1부와, 모두 색채인 제3부와를 <8> 결합해야만 했다(영화는 1, 2부 시리즈이지만, 내면적 구분에 의해, 3부작 - 삼폭대 三幅對 -로서 계획되어진 것이다).

그 모든 것의 맹아()「전함 포템킨」 중에 완전히 보여진다. 「전함 포템킨」에서도, 흑색과 백색과의 분화하는 회색이 존재하고(이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서술하겠다), 또 클라이막스의 색채적 팡파레로서, 한 순간, 붉은 깃발이 가로질러 온다!<*9>  

 파토스적 서법의 이러한 적용 케이스가, 「전함 포템킨」에 한계짓지 않는다는 것은 두드러지게 가치있다.

붉은 색으로의 폭발을 동반하는 검은 색과 흰색과의 작용에는 (그러나, 완전히 같은 시대에!), 하나 더, 전혀 파토스적인 예가 있다.

다른 관점에서부터이긴 하지만, 마야코프스키도 같은 목적으로 전혀 같은 색채적 공식을 사용하고 있다.

 마야코프스키는 ( 1925년에 여행했다) 미국의 인상, 특히 깊히 그를 분격시킨 인종차별에 대한 ㅠ가장 날카로운 인상의 하나를, 블랙 앤 화이트」 (백과 흑」) 의 시를 구체화하였다. 그 시는 늙은 흑인 - 항구의 구두닦이 - 에 대해서이다.

흑인 윌리의 시점에서는, 전 세계가 2가지색 - 흑과 백 - 으로 구분된다.

 

백색은,

잘 익은 파인애플,

흑색은,

썩은 파인애플,

백색은,

하얀 일을 하고,

흑색은,

검은 일을 한다.

 

그리고 흑인 노인 윌리에게 있어서 이해할 수 없는 유일한 사정이지만, 그 엄밀한 구분을 제거한다-

 

왜 하얀 하얀,

설탕을,

검은 흑인이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 회답으로서, 그는 흰 구름보다도 흰백인의 설탕왕에게, 얼굴을 한방 맞는다.

새 빨간 피가 검은 얼굴을 흘러, 흰 의복에 떨어진다.

백과 흑과의 사회적 갈등의 충돌은, 이러하게 붉은 색, 피의   , 새빨갛게 타는 사회적 항의의 색, 혁명의 색으로 폭발한다.

 



 



[1]그랄(Cerar) 성경에나오는지명.가사의남쪽과지중해가까이에있는가나안의남쪽경계선의서남쪽에위치한도시이다(창 10:19)

[2]随意

[3]KOLKHOZ

[4]Sovkhoz

[5] Aleksandr Petrovich Dovzhenko소련영화감독. 우크라이나출생. 소작농가에서태어나교사·외교관을거쳐신문에풍자만화를그렸다. 레프》 잡지의생산주의예술>에서영향을받아 1926년브프크(우크라이나사진영화국)의오데사촬영소에입사했다. 《개혁자와셔(1926)》 《사랑의딸기(1926)》 등 C. 채플린의영향을받은단편희극을제작하였다. 첫장편은모험활극인 《외교전서사(外交傳書使)의가방》이다. 도브젠코의개성이꽃핀것은 E. 그리피스의미국영화 《인톨러런스(1928)》에서착상했다고여겨지는 《즈베니고라(1928)》에서인데, 1000년에걸친우크라이나의변모를전설적판타지속에서정적으로그렸다. 그의불후의명작은우크라이나농촌의집단농장에서의고락을풍부한시정으로엮은 《대지(1930)》이다. 이작품에는상징적시정이넘치는영상미, 유구한시간과풍요, 인간의삶과죽음이라는그의라이트모티브가잘표현되어있다. 발성영화가나온뒤스탈린의거듭된개입으로어려움을겪었다.

[6]異物, 보통이아닌것, 특이한것

[7]対物レンズ(たいぶつレンズ)とは顕微鏡望遠鏡において、観察される物体レンズである。物体からのは、まず対物レンズを通過して鏡筒(きょうとう)入射する。対物レンズは、光束集光して像面実像をつくる。

対物レンズの性能光学機器性能まるといっても過言ではなく、収差補正された光学系ではその性能開口数口径まる。

収差といわれるずれは、ガラスの屈折率波長によってなるためやレンズが球面形状のためなどによって発生する。1レンズだけでは綺麗られないため屈折率なる特殊ガラスやレンズ非球面レンズなどのわせによって収差補正しているものもある。

 

[8]Kolkhoz 소련의농업집단화에서생겨난여러집단농장을총칭. [출처] 콜호스 | 두산백과

[9]奔流;

[10]映画単位305m



형태 조작과 본인 작품과의 관계

 본인의 작품을 간결히 설명한다면, 화상 정보의 가공 기법의 추구이며, 스토리나 플롯에 의한 구성이 아니다. 그리고 영상 시간의 구축과 형성의 성립을 목표로, 실험을 쌓아 왔다. 그것은 끝임없는 형태조작과 기법의 구사에 의한 표출과, 나 자신에 있어서의 진정한 표현을 추구하기 위해서이다. 대상을 보고 정확히 묘사되었다고 하더라도, 나 자신의 표현이 아니라면,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진실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마니에리즘 시대의 화가는 물감을 통하여 시행착오를 쌓아, 기법을 발판으로 모방의 수준을 넘어, 추상의 세계에 도착한다.

  마니에리즘에 있어서의 건축, 회화 작품과 본인의 영상작품은, 어떠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우선, 첫번째로, 우미 優美 라는 미의식을 공통점으로서 들 수 있다. 내가 도착하고 싶은 세계를 다시 말하면, 유자와 마사노부가 말하는 환원 모델에서 최종 형태에의 도달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영상의 영역에 있어서는 건축의 오더나 캐논에 해당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그 때문에 환원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나는 마니에리즘의 환원 모델에서 최종 형태에의 이행에 착안하여, 비유적으로 영상의 제 1차 소재에서 최종형태로의 도달을 목표로 하였다.  그것은 후술하는 에이젠슈테인의 파토스에 나오는 정상의 상태에서 비약한 상태로의 이행과 공통된다.

 유자와 마사노부는, 하나의 체계로서의 구조를 환원 모델이라고 정의하는데, 조작은 하나의 체계로서의 구조(환원모델)에서, 다른 구조(실제 건축의 최종형태)로의 변환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환의 프로세스에서, 처음 모델이 가지는 형태구조는 보존되면서, 그 전체성을 높여가는 것에 있으며, 최종적인 형태는 긴밀하고 투명한 관계성을 획득한다」고 설명한다. , 내 영상제작에 있어서의 제 1차 소재를, 우미를 목표로 한 이상적 모델로 변환시키기 위해 조작을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손대지 않은 상태가 유자와 마자노부의 「마니에리즘과 형태조작」에 있어서의 환원 모델로 비유할 수 있다. 여기에서 본인 제작에 있어서의 이상적 모델, 우미를 목표로한 최종 완성에 도달하기 위한 조작인 것이다. 마니에리즘 시대의 수한 작가들에게 어서 환원 모델이란, 전성기 르네상스시대의 오더나 캐논의 반영이며, 그것이, 자연세계가 가지는 미의 한발짝 전의 상태가 되어 그 미를 목표로 이상적 모델을 추구하는 것이 형태조작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自作は、簡潔に説明すると、画像情報の加工手法の追求であり、ストーリーやプロットによる構成ではない。そして映像時間の構築と形式の成立を目指し、実験を重ねてきた。これは、絶え間ない形態操作と手法の駆使による表出と、私自身における真の表現を追求するためである。対象を見て正確に描写されたとしても、私自身の表現でなければ、それは私にとって真実ではないこととなる。マニエリスム時代の画家は、絵の具を通し試行錯誤を重ね、手法を踏み台に模倣のレベルを乗り越え、抽象の世界に到達する。

 マニエリスムにおける建築、絵画作品と私の映像作品は、どのような共通点をもっているのだろうか。まず、第一は、優美さという美意識が共通点として挙げられる。私の到達したい世界の言い換えとして、湯沢正信が述べる還元モデルから最終形態への到達があげられる。しかし、映像の領域においては、建築のオーダーやカノンにあたるものが存在せず、それ故、還元モデルは存在しない。そこで、私は、マニエリスムの還元モデルから最終形態への移行に着目し、比喩的に映像の第一次素材から最終形態への到達を目標とした。それは、後述するエイゼンシュテインの「パトス」における通常の状態から、飛躍した状態への移行と重なる。

 湯沢正信は、「一つの体系としての構造[1]」を還元モデルと定義するが、「操作は一つの体系としての構造(還元モデル)から、他の構造(実際の建築の最終形態)への変換であるといえる。そして、この変換のプロセスにおいて、最初のモデルのもつ形態構造は保存されつつ、その全体性を高めていくことであり、最終的に形態は緊密で透明な関係性を獲得する[2]」と述べる。つまり、私の映像制作における第一次素材を、優美を目指した理想モデルへと変換するために操作を行うのである。何も手を加えていない状態が湯沢正信の「マニエリスムと形態操作」における還元モデルと例えられる。そこから私の制作における理想モデル、優美を目指した最終完成にいたるための操作を行うのである。マニエリスムの時代の優れた作家たちにとり、還元モデルとは、盛期ルネサンス時代のオーダーやカノンの反映であり、それが、自然界がもつ美の一歩手前の状態であるとし、その美を目指して、理想モデルを追求することが、形態操作であると解釈できる。



[1]前掲、「マニエリスムと形態操作」『建築文化』、108頁。

[2]前掲、「マニエリスムと形態操作」『建築文化』、108頁。


 



유자와 마사노부 「마니에리즘과 형태 조작」

 유자와 마사노부는 마니에리즘과 형태 조작에서, 마니에리즘건축 형태 조작의 기본 양상을 제시한 것이고, 그것이 다소 조작주의에 빠져 있다고 해도 작업을 명확하게 파악하기위해서는 아무래도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 그리고 이는 제작자자유에서 유래하는 개인적인 의미론에서 논의성립시키는 통사론으로의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출구이기도 했다 . 마니에리스트에게 오더 혹은 전성기 르네상스 작품은 경시하기 어려운 규칙 혹은 전형으로서 있고 이것들에서 그들은 출발한 것이다. 전반적인 자유를 빼앗긴 그들에게 통사론적 조작 밖에 길은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건축의미 영역이나 상징적 의미에서 탐구하는 의미론을 부정하고 의미론적 해석한계문법과 질서에 해당하는 통사론적 조작에 의해 극복하려는 시도로 해석 할 수있다. , 의미개인적인 생각지나지 않고,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것이 의미인가라는 것에 의문을 가진  것이다. 주장은 의미론적 해석한계문법과 질서에 해당하는 통사론적 조작에 의해 극복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있다. 

 

 湯正信マニエリスムと形態操作、「マニエリスムは建築における形態操作基本的提示したのでありそれが幾分操作主義っているといわれても操作明確にとらえるにはどうしてもけられないものであるのだそしてこのことは、制作者自由からする個人的意味論から、議論成立するることを可能にするつの出口でもあるのだ。マニエリストにとって、オあるいは盛期ルネサンスの作品は、りがたい規則あるいは典型としてあり、これらかららはしたのである。全面的自由われたらにとって、論的操作しかされていなかったとえるかもしれない」とべているが、これは、建築意味領域的意味から意味論否定し、意味論的解限界文法秩序する統語論的操作により克服しようとするみだとできる。すなわち意味個人的えにすぎず作品じてえたいことが意味なのかというところに疑問見出したのであろうその主張は、意味論的解限界文法秩序する論的操作により克服しようとするみであるとできる。



조형연구센터 발표_[파토스와 기법 -영상제작의 입장에서]

[파토스와 기법 -영상제작의 입장에서]

 

 

 

イメージライブラリー映像特別講座
造形研究センター・リサーチフェロー研究発表
シンポジウム

「造形研究と映像の可能性映像データベースの実証実験を踏まえて」

 

日時20121213日(木) 1600開場 16:3018:00
会場:武蔵野美術大学 美術館ホール

 

「パトスと手法 - 映像制作の立場から」

発表者:孫于景손우경

 

造形研究センタによる「平成20年度 私立大学戦略的研究基盤形成支援事業」による「造形資料する統合タベスの資料公開」をテマとした5年間のプロジェクトが、この2012(平成24)年度最終年度となった。このうち、「映像資プロジェクト」が美術館・図書館のイメジライブラリ中心展開している映像タベス」の構築公開についてプロジェクトが画段階からってきたが、造形研究教育立場からその検証は、プロジェクトの研究員スタッフだけではなく、独自視点政策上立場をもった研究者によってはじめて可能となる。造形研究センタでは、2011(平成23)年度末より、学院博士課程修了対象としたリサチフェロー制度発足した。これに田中千賀子小澤啓孫于3映像資料プロジェクトのメンバとして任用された。3は、2012(平成24)4より、センター研究員である高橋陽一とともに研究会い、合理的検証仕方造形制作及研究活用仕方について協議ねて、「実証実験」の方法とシンポジウムと報告書作成という検証結果公開方向性確定した。
 2012(平成24)20121213日午後430より、「造形研究センター・リサフェロー研究発表」としてシンポジウム「造形研究映像可能性-映像タベスの実証実験まえて」として3による発表実施した。
 田中千賀子からは「学校園にかかわる映像資料について」として、学校園関係資検索結果と、教育史分野映像タベ・目録類との照合結果報告した。 小澤啓からは「神秘性作品制作立場から―」として、みずか制作する神秘性をテマとする絵画作品写真資料提示して、神秘性どにする検索結果関係学内外でのデタベ検索結果相違検証とその状況関連する映像作品提示などをった。
 孫于景からは「パトスと手法映像制作立場から―」として、映像制作技法するデタが映像タベスでしていることを検証し、映像教育などでの活用可能性示唆した。
 全体のコディネタには高橋陽一があたり、会場からは、研究発表内容や、今後映像タベ活用けての可能性などが質問された。
3報告加筆のうえ、『造形教育 蔵野美術大学大学院教育学研究」ゼミナ報告書(ISSN2187-5375)6201311-21掲載した。

 

 

 

 

 

 

 

 

 

 

 

 

 

 

 

 

 

 

 

 

 

 

 



On Eisenstein’s “Pathos”

 

 

On Eisenstein’s “Pathos”

I very much sympathize with the theory outlined by Sergei Eisenstein in his essay “Pathos.” My works are formed solely by method. Making works only by method in order to show them for a long time is an extremely experimental challenge. I think that Eisenstein’s theory of pathos is a representation of my own style of production and stance. “Pathos” was part of a thesis written by Eisenstein in 1946–47. The Japanese version was published in 1984 as part of a collection of Eisenstein’s works issued from 1973 to 1993.

Eisenstein analyzed and discussed a wide range of artistic genres using the word “pathos.” By “pathos,” he meant the methodology of producing works of art through method and manipulation. The manipulation of time is certainly an integral part of my works. Like paintings and photographs, videos (moving images) can be evolved significantly through the manipulation of quality, the manipulation of form, and method. Compared with other mediums of art, however, the most prominent characteristic of video can be said to be its time axis. In “Pathos,” Eisenstein gives specific examples of the practice in his own films, as well as his future vision for films. In this paper, I identify the specific meanings of “pathos” relating to video art.


 

 

エイゼンシュテインのパトスについて

通常の映像作品には、ストーリーやプロットのようなものがあるが、私の作品にはストーリーが存在せず、手法だけで成立を試みている。このような作品は可能であろうか。そして、先行する芸術や理論の中に、私の試みと一致する例はあるのだろうか。映像の分野だけではなく、他ジャンルの中にも、手法だけで作品を成立させているものはあるのだろうか。そして、映像との関係はどうなっているのか。このような問いから、本稿は出発する。

 私は理論において、エイゼンシュテインの論文「パトス」に共感を覚える。自分の作品は手法によって成立するもので、さらにこの手法だけを、長時間持たせて見せるために制作することは、非常に実験的な試みであろう。このような私の制作の方法やスタンスを代弁するものが、エイゼンシュテインの「パトス」理論ではないかと考えるようになった。「パトス」はエイゼンシュテインが1946年から1947年に執筆した[1]自身の論集の一部である。エイゼンシュテインの「パトス」は、日本では1973年から1993年にかけて刊行された『エイゼンシュテイン全集[2]』の内、1984年刊行の『エイゼンシュテイン全集第8  作品の構造について[3]』に収録されている。エイゼンシュテインはパトスという言葉を通じて、多岐にわたる芸術ジャンルを分析、提示した。エイゼンシュテインにおける「パトス」とは手法や操作による作品制作の方法論である。私自身の制作においても必ず時間の操作を行うものである。絵画や写真と同様に映像(動画)も質的操作や形態操作、手法による飛躍は可能である。しかし、他の芸術と比べ、映像が持つ最大の特徴は時間軸にあると言える。エイゼンシュテインの「パトス」の中には自身の映画作品における実践、映像の未来図が述べられている。私は本論において、映像におけるパトスの手法の中でも、映像独自のパトスを見出していくことにする。



[1] エイゼンシュテイン全集刊行委員会訳『エイゼンシュテイン全集第8巻 作品の構造について』、キネマ旬報社、1984年、200頁。

[2] エイゼンシュテイン全集刊行委員会訳『エイゼンシュテイン全集』、キネマ旬報社、1973-1993年。

[3] エイゼンシュテイン全集刊行委員会訳『エイゼンシュテイン全集第8巻 作品の構造について』、キネマ旬報社、1984年。

 

Regarding Eisenstein 's "Pathos"

 Where as ordinary movies have some kind of story or plot, my video pieces do not. I attempt to craft each piece as a pure expression of my original methods. How can it be possible? Were there any previous effort with a similar intention or any preceding study on such method-centered works? How about other art categories other than videos? If there are equivalent examples in any other genre, how do they affect video art? These questions are the starting point of this thesis.

 Among earlier studies, the one I most sympathize with is the "pathos" theory by Eisenstein. As I mentioned above, my works are formed solely by methods. Making such pieces is quite experimental and challenging because it is difficult to keep audience's attention without a story or plot. In this regard, Eisenstein's "pathos" theory seems to represent my way of creation and the viewpoint I always have when finishing my works. “Pathos” was a part of his thesis written in 1946-47. Its Japanese translation is included in the book “Eisenstein Zenshu, Vol.8” (1984).Eisenstein analyzed and discussed a wide variety of art genre, using the word "pathos". By "pathos", he meant a methodology for creating artwork with a distinct method or manipulation. Manipulation is certainly an integral part of my works. Just as paintings and photos, videos can be evolved significantly by manipulating quality or forms. However, compared with the other art medium, the most prominent characteristic of video is that it has a timeline. Eisenstein's thesis on "pathos" contains concrete examples of the methodology in his movies as well as his vision of future films. With those deeply in mind, I have written this thesis to identify the specific meanings of "pathos" which are connected only with video art.


   エイゼンシュテインは〈映像〉という形式の特徴は、形式そのものの流動性にあるとしている。これを極端に推し進めると、刻刻とその形式が変化する映像を思い描くことができる。孫于景の映像は、正に、氷のフィルターの操作によってそれを達成したものである。展示作品の内「回帰」と「循環」は、作品の価値を形式の流動性に置くと、過渡的な作品である。これらは、氷フィルターによって操作された映像を氷が溶ける全プロセスで提示するのではなく、その変化のピーク映像群をカット編集して構成したものである。それに対して「交差点、木曜日の朝」は習作ながらも、〈映像〉という形式を問う点で可能性に充ちている。交差点の風景の情報としては実時間で3 分間、それと厚さ2cm の氷が溶ける45 分間、この2 つの時間を、映像の時間操作によって、風景の速度を速めることなく、3 分間の中に重層化させている。氷のフィルターによる操作と時間操作を併せ持ったこの手法こそが、博士論文で立証を試みた孫于景の「パトス」の手法である。
板屋 緑
武蔵野美術大学大学院 映像コース教授


 Eisenstein argued that the characteristic of film was the fluidity of the form itself. If you carry that argument to the extreme, you can imagine a film in which the form changes every moment. The videos of Son Woo-kyung do indeed achieve this phenomenon through ice filter manipulation. Among the exhibited works,“ Recurrence” and “Circulation” can be described as transitional works that place the value of the work in the fluidity of the form. Rather than showing a video manipulated by the ice filter through the whole process of the ice melting, these works are comprised of edited cuts of peak image groups of the change. In contrast, while only a study,“ Intersection, Thursday Morning” is full of potential in terms of questioning the form of film. There are two times in this video, 3 minutes of real-time information on the intersection scene and 45 minutes of melting ice with a thickness of 2 cm. Through the video’s time manipulation, these two times are stratified within three minutes without accelerating the speed of the scene. This method, consisting of both ice filter manipulation and time manipulation, is indeed the method of“ pathos” that Son attempted to verify in his doctoral thesis.
Ryoku ITAYA
Professor, Imaging Arts and Sciences, Graduate School of Musashino Art University


Tag : 손우경


Ph.D. Thesis Summary


SON Woo-kyung
“The art of‘ pathos’ in video form: Focusing on my own works”
Videos usually have a storyline and plot, but in my works I attempt
to make videos using only method and without any story. Are such
works possible? Are there any examples in existing art and theory
corresponding to my attempt? Are there any works, not only in the field
of video but in other genres as well, based only on method? And what
is the relationship with video? My thesis begins with these questions.
As theory, I very much sympathize with Sergey Mikhaylovich
Eisenstein’s essay titled“ Pathos.” My works are formed solely by
method. Making works only by method in order to show them for a
long time is an extremely experimental challenge. I came to think that
Eisenstein’s theory of pathos is a representation of my own style of
production and stance.“ Pathos” was a part of Eisenstein’s thesis
written in 1946–47. The Japanese version was published in 1984
(titled“ On the Structure of Eisenstein’s Works”) in Volume 8 of a
collection of Eisenstein’s works issued from 1973 to 1993. Through
the word“ pathos,” Eisenstein analyzed and discussed a wide range
of artistic genres using the word“ pathos.” By“ pathos,” he meant
the methodology of producing works of art through method and
manipulation. In my own production as well, I certainly conduct the
manipulation of time. Like paintings and photographs, videos (moving
images) can achieve leaps through qualitative manipulation, formative
manipulation, and method. Compared with other art, however, the
most prominent characteristic of video can be said to be its temporal
axis. In“ Pathos,” Eisenstein explains the practice of the concept in
his own films and his future vision for films. In my thesis, among the
methods of“ pathos” in video, I will identify the specific meaning of
“pathos” in video art.


孫 于景
映像における「パトス」の手法―自作を中心に
通常の映像作品には、ストーリーやプロットのようなものがあ
るが、私の作品にはストーリーが存在せず、手法だけで成立を
試みている。このような作品は可能であろうか。そして、先行
する芸術や理論の中に、私の試みと一致する例はあるのだろう
か。映像の分野だけではなく、他ジャンルの中にも、手法だけ
で作品を成立させているものはあるのだろうか。そして、映像
との関係はどうなっているのか。このような問いから、本論は
出発する。
 私は、理論として、エイゼンシュテインの論文「パトス」に
共感を覚える。自分の作品は手法によって成立するもので、さ
らにこの手法だけを、長時間持たせて見せるために制作するこ
とは、非常に実験的な試みであろう。このような私の制作の方
法やスタンスを代弁するものが、エイゼンシュテインの「パト
ス」理論ではないかと考えるようになった。「パトス」はエイ
ゼンシュテインが1946 年から1947 年に執筆した。エイゼン
シュテインの「パトス」は、日本では1973 年から1993 年に
かけて刊行された『エイゼンシュテイン全集』のうち、1984
年刊行の『エイゼンシュテイン全集第8 巻作品の構造について』
に収録されている。エイゼンシュテインはパトスという言葉を
通じて、多岐にわたる芸術ジャンルを分析、提示した。エイゼ
ンシュテインにおける「パトス」とは手法や操作による作品制
作の方法論である。私自身の制作においても必ず時間の操作を
行うものである。絵画や写真と同様に映像(動画)も質的操作
や形態操作、手法による飛躍は可能である。しかし、他の芸術
と比べ、映像が持つ最大の特徴は時間軸にあると言える。エイ
ゼンシュテインの「パトス」の中には自身の映画作品における
実践、映像の未来図が述べられている。私は本論において、映
像におけるパトスの手法の中でも、映像独自のパトスを見出し
ていくことにする。

Tag : 손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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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우경의 시공간 연구소] SON Wookyung (Video Artist, PhD in Art and Design) uses a range of media including video, sound and performance investigating the relationship between space, the body and perspective. (wmay30@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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