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와 마사노부는 「마니에리즘과 형태 조작」에서, 「마니에리즘은 건축 형태 조작의 기본 양상을 제시한 것이고, 그것이 다소 조작주의에 빠져 있다고 해도 작업을 명확하게 파악하기위해서는 아무래도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 그리고 이는 제작자의 자유에서 유래하는 개인적인 의미론에서 논의를 성립시키는 통사론으로의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출구이기도 했다 . 마니에리스트에게 오더 혹은 전성기 르네상스 작품은 경시하기 어려운 규칙 혹은 전형으로서 있고 이것들에서 그들은 출발한 것이다. 전반적인 자유를 빼앗긴 그들에게 통사론적 조작 밖에 길은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건축을 의미 영역이나 상징적 의미에서 탐구하는 의미론을 부정하고 의미론적 해석의 한계를 문법과 질서에 해당하는 통사론적 조작에 의해 극복하려는 시도로 해석 할 수있다. 즉, 의미는 개인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고,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것이 의미인가라는 것에 의문을 가진 것이다. 그 주장은 의미론적 해석의 한계를 문법과 질서에 해당하는 통사론적 조작에 의해 극복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있다.
湯沢正信は「マニエリスムと形態操作」で、「マニエリスムは、建築における形態操作の基本的様相を提示したのであり、それが幾分操作主義に陥っているといわれても、操作を明確にとらえるにはどうしても避けられないものであるのだ。そしてこのことは、制作者の自由から由来する個人的な意味論から、議論の成立する統辞論へ移ることを可能にする一つの出口でもあるのだ。マニエリストにとって、オーダーあるいは盛期ルネサンスの作品は、侮りがたい規則あるいは典型としてあり、これらから彼らは出発したのである。全面的な自由を奪われた彼らにとって、統辞論的操作しか道は残されていなかったと言えるかもしれない」と述べているが、これは、建築を意味の領域や象徴的意味から探る意味論を否定し、意味論的解釈の限界を文法や秩序に値する統語論的操作により克服しようとする試みだと解釈できる。すなわち、意味は個人的な考えにすぎず、作品を通じて伝えたいことが意味なのか、というところに疑問を見出したのであろう。その主張は、意味論的解釈の限界を文法や秩序に値する統辞論的操作により克服しようとする試みであると解釈できる。